화물차 운전기사 A씨는 2019년 7월 전북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다 다른 차를 들이받았다. 사고 직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던 그는 보험회사 직원이 오자 급히 현장을 벗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근처 슈퍼였다. 그곳에서 소주 1병과 복숭아 음료, 종이컵을 산 뒤 3번에 나눠 다 마셨다.
A씨의 이런 행동은 음주운전 당시의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방해하기 위한 일명 ‘술타기’ 수법이다. 직전 해 음주운전이 적발됐을 때도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A씨는 결과적으로 모든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수사기관은 현장에서 측정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0.169%)에서 ‘후행음주’로 인한 수치(0.115%)를 제외하고 0.054%만을 적용해 기소했다.
법원은 이마저도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계산 방식이 아니라며 후행음주로 인한 추정치를 0.141%로 봤다. 뺄셈의 크기가 커진 탓에 A씨의 음주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처벌 수치(0.03%)에 미달하는 0.028%만 인정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A씨에게 무죄를 확정하면서도 후행음주 꼼수를 처벌할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우선 “죄증(범죄증거)을 인멸하기 위한 의도적인 추가 음주행위를 통해 음주운전자가 정당한 형사처벌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정의의 관념이나 안전사회를 염원하는 국민적 공감대 및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대법원 지적처럼 후행음주는 형사처벌을 피하려는 음주운전자에게 동아줄이 되고 있다. 23일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서 2020년 1월1일부터 이날까지 ‘추가음주’나 ‘후행음주’를 검색어로 해서 나온 음주운전·위험운전치상 혐의 사건은 총 22건이었다.
이들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음주운전 직후 혈중알코올농도 검사를 하지 못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운전 당시 상태를 역추적했다. 이 경우 피고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게 가장 유리한 수치를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과정에서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이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음주상태로 경기 가평에서 서울 중랑구까지 약 50㎞를 운전한 혐의로 기소된 B씨도 이런 이유에서 지난해 8월 서울북부지법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B씨는 당초 단속에 걸리지 않고 집에 도착했지만,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은 경찰이 자택에 찾아가 음주 측정을 했다. 검사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124%가 나왔지만, B씨는 집에 돌아와서 ‘소맥’ 2잔을 마셨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은 후행음주로 인해 오른 혈중알코올농도는 0.056%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법원은 2배가 넘는 0.118%를 인정해 처벌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처벌 회피를 목적으로 한 후행음주를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후행음주가) 음주 측정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후행음주를 기준으로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정하는 등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음주 뺑소니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씨 사건을 계기로 대검찰청도 이런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신설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20일 법무부에 건의했다. 김씨는 음주 뺑소니 후 편의점에서 주류를 사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후행음주를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건의안에는 음주 사고 뒤 의도적으로 술을 더 마시면 1∼5년의 징역 또는 500만∼2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김씨는 24일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미뤄달라고 신청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김씨는 당일 열리는 콘서트를 위해 심사 일정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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